대략 2편은 64년 도쿄올림픽부터, 80년대 초입
(민영화이야기는 중반이지만 3편에서도 아마 다시 나오니 넘어가자)
9.
일본이 본격적으로 오늘날과 같은, 아니 오늘날보다는 못하지만, 선진국의 반열에 선건 언제일까
아니 오늘날 선진국이라고 부를 수 있는 나라의 보편적인 특징은 무엇일까?
국제관계학적으로는 이상한 개념이지만 강대국인가를 측정하는 단위로서
강대국의 최소(least of the great powers)가 있다.
쉽게말해서, 강대국계의 변기 같은 척도계랄까…
여하튼, 이게 맞는 기준인진 모르겠지만, 우리나라 또한 마찬가지이고
통상, 선진국이라고 하면 OECD(경제협력개발기구)에 가입한 나라들이라는 이상한(?) 오해가 있다.
(1996년 10월 12일자 신문)
단적인 예로, 한국 같은 경우는 MSCI 선진국 지수에 편입되지 않았으며, OECD 회원국 가운데는 멕시코와 코스타리카와 같은 도상국 또한 있기에, OECD회원국=선진국은 흔히하는 오해 중 하나이지 않을까 싶다.
여하튼, 그건 그렇다치더라도, 본격적으로 일본이 선진국이 된 해는
1964년이다.
이 해에 일본은 OECD에 가입했다.
아니, 방금까지 OECD에 가입한 국가는 선진국이 아니라며?
라고 반문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라 첨언을 하자면,
지금의 OECD 회원국은
이렇다.
이들 중 1964년 당시 가입국은
창립국이였던
오스트리아, 벨기에, 덴마크, 프랑스, 그리스, 아이슬란드,
아일랜드, 이탈리아, 룩셈브루크, 네덜란드, 노르웨이, 포르투갈, 스웨덴, 스위스, 터키 영국
창립국 이외의 가입국이였던
독일과 스페인, 캐나다와 미국이였다.
그 당시 일본은 이들 다음 순서였던 것을 고려해봤을 때,
그 당시의 OECD는 선진국의 척도로 봐도 괜찮지 않을까라는게 필자의 사견이다.
대한민국은 충분히 잘사는 선진국이다. 물론 개도국부터 차근차근 쌓아올라왔고,
식민역사도 있지만 선진국이라고 본인은 생각함ㅇㅇ 왜냐하면 선진국이 만능은 또 아니니..
10.
Q. 세계에서 가장 큰 자동차 그룹은 어디인가
A. 도요타이다.
물론 많은 사람들이 알았겠지만…
넘어가자.
가 아니라,
도요타가 본투비 1등도 아니였을 뿐더러, 2차세계대전의 전범국인데, 이미지가 좋았을 리가 무색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1등의 자리로 올라 올 수 있게 되었을까.
답은 오일쇼크 때문이다.
오일쇼크의 원인을 간단히 이야기하자면, 이스라엘 때문이다.
이스라엘이 현재 위치에 나라를 건국한 이후, 주변 중동국가로부터 텃세를 놓았다.
(아니 어떤 미친놈이 텃세를 전쟁으로 부려)
그렇게, 4차례의 전쟁을 중동국가들이 돌아가면서, 이리저리 이스라엘을 조져보려 노력한다.
결론은 이스라엘이 4전 4승했다.
(…)
이로 인해, 빡친 중동국가들이 푸틴이 가스밸브 잠구는거마냥
석유를 감산해버린 일을 오일쇼크라고 한다.
각설하고, 도요타이야기로 돌아와서, 당시 당연히 석유는 필요한데, 석유가 적으니 수요와 공급은 불안정하게 되었을 거고, 자연스레 가격은 올라갔을 것이다.
그렇담, 상식적으로 돈 없는 소비자라면, 가성비를 찾아야하지 않겠는가?
자동차에서 가성비는 결국 연비일 건데
그 중에서, 일본차가 가장 연비가 좋아, 입소문이 나게 되고,
지금의 도요타가 만들어진거라 한다.
Ps. 줄기차게 나왔던 고도경제성장기는 오일쇼크를 끝으로 막을 내리게 된다.
12.
이케다 하야토의 친구 사토 에이사쿠에 대해 한번 알아보자.
재미있게도, 그는
1.5편에 나왔던 기시 노부스케의 동생이다.
이야기가 좀 긴데 요약하자면,
기시 노부스케의 아버지인 기시 히데스케가 사토 가에 데릴사위로서 들어가면서
‘사토 히데스케’가 되었다.
이에 원래 기시는 ‘사토 노부시케’가 되었어야하나, 기시 가를 잇기 위해 기시 노부스케가 되었고, 동생이던 사토 에이사쿠는 사토 가에 남아 가문을 그대로 유지하게 된다.
왜 이러는지는 나도 모르겠다.
사실 이정도 정치가문이면 뭐… 납득은 반정도 가지만(가문에 총리가 3명! 근데 그 시초는 기시!)
이걸로 끝나지 않고
기시 노부오란 사람이 있다.
현행 기시다 후미오 내각 이전인 스가 내각에서 방위성 대신(한국으로 치면 국방부장관)을
지낸사람이다.
그는 엄밀히 따지면, 아베의 동생이다.
어떻게 된거냐하니, 기시 노부스케에게는 기시 노부카즈라는 친아들이 있었다.
근데 그 기시 노부카즈에겐 자식이 없었고,
그렇게 원래는 아베의 동생으로 아베 노부오로 잘 살고 있던 사람을
기시 노부오로 만들어서 기시 가를 잇게 만든 것이다.
뭐 여하튼 다시 사토 에이사쿠 이야기로 돌아와서
전편에 말했듯 그는 이케다 하야토와 오랜 친구였다.
관계가 틀어졌었어도, 통상산업성(현재의 경제산업성)까지 지냈었다.
통상산업성의 경우 현재 한국에서의 산업자원통상부 정도의 레벨이 된다.
이후, 이케다 하야토는 암투병으로 인해 총리직을 사퇴하게 되고, 사토는 자신의 계파를 중심으로 총리 집권에 성공하게 된다.
그리고
사토 에이사쿠는 아베 신조 이전까지 전후 세대에선 최장시간 집권 한 총리로 남아있다.
13.
경제적으로 특출나게 중요한 정책은 없었지만,
사토 에이사쿠는 이자나기 경제라고 불릴정도로 오일쇼크 직전까지 일본 경제를 견인했던 시기를
풍미한 정치인이었다.
성격적으로 문제가 있었지만, 그 이야긴 조금 차치하더라도
그의 가장 큰 업적은 누가 뭐라해도
67년의
‘비핵 3원칙’일 것이다.
「作らず、持たず、持ち込まず」
‘만들지 않고, 가지지 않고, 가져 들고오지 않고’
쓰리고
이 세 문구로 대표되는 3원칙 덕분에 74년 노벨 평화상을 받게 된다.
형은 전범 동생은 평화상.. 양 끝단
여하튼 이를 계기로 미국으로부터
1968년 오세아니아에 위치한
오가사와라를 반환 받고
(구한말의 김옥균이 유배당한 적이 있는 곳이다)
1972년엔 오키나와를 반환 받게 된다.
이제 곧 3편이네요…
열심히 만들어 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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