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하게도
꽤나 많은 분들이 이 컨텐츠를 읽어주시며
(보고 바로 나갔는진 모르겠지만)
댓글도 꽤 달아주시어 마지막인 5편까지 올 수 있게 되었다.
사실 맨 처음 이 컨텐츠를 구상하고,
글을 올렸을 때 가장 걱정스러웠던 것이, 반일에 관한 것이다.
반일이라면 반일이고 친일이라면 친일처럼 보일 수도 있고,
또 가급적 정치적인 내용을 배제하고자 노력했지만
그래도 경제와 정치는 서로 밀접해 있는 만큼,
도려낸 부분이 많아서 이야기 자체가 꽤나 재미없어진 것도 사실이다.
필자와 같이 일본에 대해 알고,
윗 인물 같이 친일은 아니지만
일본에 대해 고찰하는 사람들을
보통 지일(知日)이라고 한다.
대개는 친미, 친중과 같이 ‘친’을 붙이지만,
민족반역자와 같은 긴 단어보다는 친일이라는 단어가
고착화되었기에 대체어로서 사용되는 감이 있다.
여하튼,
왜 저양반이 쌩뚱맞게 개소릴 하고있는 것인가?
라고 생각하는 분들을 위해 말하자면
이건 큰그림이었던 것이다.
무얼 위한 큰 그림인가 하면
이 사람에 대해 논해보기 위해서이다.
일생에 대한 내용은 다음에 기회가 있음 해보고
고이즈미 준이치로가 임기를 마친 후
52세의 나이로 최연소 총리가 된다.
사실 초창기의 아베 내각은 단명내각이었고
또 별다른 업적도 없었으나
꽤나 이양반은 친한(혹은 지한)에 적극적이였다
그가 매번 중의원선거 때마다 가는 고깃집도
한식당이라는 설도 있으며
전기 정권(우리가 흔히 아는 아베정권을 후기로 보자)에서는
현충원 참배와 더불어
“한국인들에게 필설로 표현할 수 없는 고통을 줬다”
“과거사와 위안부 문제에 대해 한국과 적극적으로 협력하고 싶다”
등을 발언을 통해
꽤나 괜찮은 분위기를 형성했다
뭐 여하튼, 그의 첫번째 내각은
말 그래로
농림수산상은 비리의혹으로 자살
방위상은 원폭투하는 어쩔수 없는일이라며 구설에 오르고
행정개혁상은 재정운영 관련 문제로 사임
등등 여러 스캔들로 얼룩지게 되며
결정적으로 지병으로 인해 사임하게 된다
하지만
원주율을 3이라고 편하게 하는게 좋을지 3.14라고 적는게 좋을지
유토리 교육정책에 대해 물어보는 기자의 질문에
본인은 3.14보다 더 길게 말할 수 있다하던 원주율 아저씨
후쿠다 야스오
그냥 존재자체가 매운맛 막말인
아소다로
(…)
를 거쳐
2008년 리먼사태를 맞으며 자민당은 몰락하고
하토야마 유키오를 필두로한 민주당은
(하토야마가 누군지 궁금한 사람은링크를 참조하자)여기있다
45대 중의원 선거에서 압도적인 승리로
정권교체에 성공하게 되고
그들에겐 꽃길만 열릴 것 같았다
하토야마 유키오는 기존의 미국에게
국방을 맡기기보단
중국과 유화적인 스탠스를 취함으로서
미국을 제외한 아시아 공동체를 만들자라는
발언으로 미국의 분노를 사게되며
후텐마 공군기지 이전을 비롯한 여러 논란만
남긴채 총리에서 물러나게 된다
이후
총리가 된 간 나오토
2010년 6월 시작된
간 나오토 내각도
꽤나 짧은 내각이였는데
센가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TPP 가입 문제 등의
문제들을 남긴 내각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간 내각 당시인 2011년
3월 11일
메그니튜드 9.1이라는
일본 지진 사상 최악의 규모라 불리는
동일본 대지진(일본명 東日本大震災)가 발생했으며
그의 임기가 마칠 때까지,
거의 모든 총력을
이 사태에 대한 수습으로 정신이 없었다.
당시 관방장관
(한국으로 따지면 청와대 대변인 + 비서실장)
이였던
현재의 제1야당인 입헌민주당 당대표를 맡고 있는
에다노 유키오(枝野幸男)는
날이 가면서 얼굴이 상할정도로 격무에 시달리며
트위터에 ‘자라 에다노’ 라는 해쉬태그까지 만들게 될정도로
대중들에게 인지도를 높이는 계기가 된다일해라 토가시
토가시는 일해라
주제가 경제사이니
경제에 대한 이야기
그중에서도 금융에 대한 이야기를 하자면
2011년 3월 11일 당시 닛케이는
떡락하게 된다.
사실 지진 초반의 경우
1995년 한신대지진(阪神淡路大震災) 당시
지진 이후 토목건설 관련 주가가 급등한 기억으로
건설주 위주로 급등했었으나,
그 마저도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사태 때문에
다시 하락전환하게 된다.
그럼 지금까지도 일본 전체의
아킬레스건이며, 앞으로도 어떻게 될지 모르는
이 사태의 원인은 과연 일본 정부 때문인가?
라고 질문한다면,
정답은
「아니요」이다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를 담당하던 기업인
‘도쿄전력’ 같은 경우
한국의 한국전력과는 다르게 민영회사로 시작했으며
일본은 도쿄전력 이외에도 간사이전력, 홋카이도전력 등의 10개의
일반사업자로서의 전력회사가 민자로 상장되어 있다.
때문에, 만약에 도쿄전력이 천문학적인 손해를 감수하고
방파제 높이를 훌쩍 넘은 쓰나미가 덮친 원자로가
멜팅다운 되는 상황에서
해수로 그 온도를 낮추는 판단을 했다면
아니 조금 더 빨리 원자로를 포기했더라면
원자로 폭발과 방사능 누출이란 희대의 병크는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물론 간 나오토 총리를 필두로
어거지로 버티던 도쿄전력의 억지를 무릅쓰곤
쓰나미 30시간 이후에 해수를 부었고
도쿄전력이 원전을 포기하고 철수하려하자,
소방관과 자위대를 싹싹 긁어모아선 원전 냉각에 힘쓰며
일본침몰이라는 최후는 그래도 넘어서게 된다.
다행이라고 해야할지
천재일우라고 해야할지
그는 도쿄공대 출신의 공돌이였으며
심지어 전공도 응용물리학으로
원전에 대해 꽤나 전문가 수준의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
쉽게 말하자면
카이스트 원자력및해양공학과 출신의
총리였던 셈이다.
여하튼, 2011년 한 해 동안
원전을 못 돌리게 되니,
계획정전을 통해
돌아가면서 정전을 시행하며 어거지로 버티다가
화력발전소를 무지막지하게 돌려
그 해 경상수지가 박살나게 된다.
(물론 자동차 및 소재부품 사업 또한 피해가 심했다)
뭐… 먹어서 응원하자! 라는 괴상하기 그지없는
캠페인을 펼친 정부이기도 하지만
이해는 되는 정책이라고 할까..
일단 저번에 올린 유바리시처럼되면 안되니깐..
심지어 여긴 도도부현 그러니깐 한국으로 따지면 지자체
규모부터가 다르다!!
아 참고로 먹어서 응원하자란
후쿠시마 농산물 이야기가 나와서 하는 말인데
현재 일본 내에서 유통중인
편의점 상품들의 경우
다른 현들에서 나오는 농산품에 비해
현저하게 싼 가격으로 매입할 수 있다는 장점
덕택(?)에
삼각김밥이라던가 도시락에 쓰이는
농산물이 후쿠시마 산인 경우가 많다하니
유의하도록 하자
그 외에도 여기 적기에 공간이 부족할 정도로 많긴 하다.
다시 돌아와서
얼마 못가서 민주당 정권은 몰락하고
다시 익숙한 자민당
그리고
그가 돌아오게 된다왕의남자
아베 신조는 취임하자마자
일본은행 총재를 갈아엎고는
슈퍼비둘기파인 쿠로다 하루히코
현 일은총재를 앉힌다
이유는
대담한 통화정책
大胆な金融政策
기동적 재정정책
機動的な財政政策
거시적 구조개혁
民間投資を喚起する成長戦略
이라는, 세개의 화살을 골자로 하는
‘아베노믹스’의 일환으로 말이다.
쉽게 말하자면, 일은총재를 갈아치움으로써
통화정책은 일은총재가
재정정책은 내각이
담당하는 형태로 운영하여
버블 붕괴이후의 디플레라는 늪에서 벗어나기 위해
애를 쓰게 된다.
물론 양적완화를 통해 엔화를 찍어냄으로써
엔화의 가치를 내리겠다는건데
그게 사실 2016년까지는 잘 진행되는 듯했다
왜 ‘듯했다’ 라는 표현을 쓰는가 하면
모든건 계획대로 안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무슨말이냐하면
2016년 당시 영국 총리였던 데이비드 캐머런이
EU 탈퇴파보다 잔류파가 여론조사상 더 높게 나온걸 보곤
저지른 실수로부터 기인한 사건이다.
가까운 과거이니 그 당시를 회상해보자면
어디까지나 뇌피셜이지만
당시 영국은 그리스를 포함한 남유럽 국가들의 경제위기로
떠먹여 살려주는 행태와
테러의 발생에도 불구하고 난민을 수용하는
독일의 스탠스에 진이 빠져 브렉시트란
일종의 블러핑을 통해 입지를 EU 내에서 우위를 점하려는 게
원래 목적이지 않았을까 싶다.
그런데, 어쩌다보니 탈퇴파가 더 많이 나왔고
가지말라고 바짓가랑이를 물고 늘어질 줄 알았던 EU 국가들은
다른 반동분자가 나올까봐 영국에게 얼른 방 빼라고
독촉했던 기억이 난다.
다시 엔화로 돌아오자면
유로와 파운드에 비해 상대적으로 안전자산인 엔화로
자산들이 다시 쏠리면서
몇 년간 돈을 퍼부으면서 낮췄던 환율이 몇일사이
다시 원상복구 된 것이다.
여기서 잠깐
브렉시트는 시작에 불과했다
2016년 한해만
터키 쿠데타
트황상 트럼프의 당선
등으로 엔화는 다시 주춤주춤
두둠짓 두둠짓
올라가게 된다
엔/원
엔/달러
또한 2015년 당시부터 논란이 되었던
소비세 10% 인상이
(8%->10%)
2번이나 연기되다 2019년 10월 시행되면서
지지율 하락을 면치 못하다
2020년 9월
최장수 총리를 갈아치우고
스가 요시히데 당시 관방장관이 총재선에서 이기며
퇴임하게 된다.
사실 스가 내각의 경우
스가 요시히데란 정치인 자체가
뒷받침해주는 파벌도 없었으며
1년 남짓의 보궐선거 같은 의미의 자리였기에
독자적인 노선 또한 생성되기 힘들었으며
다들 알다시피
고노타로와 결선투표에서 이긴
기시다 후미오가 자민당 총재가 되었으며
10월31일인 오늘
선거를 치뤄
1달 내에 특별국회 소집을 통해
정식적으로 총리에 취임하게 될 것이다.
물론
제1야당인 입헌민주당이 기적적으로 여당이 될 수도 있고하지만 여론조사상으로 지지율이기시다 후미오의 40퍼센트 후반대이기에 딱히..
일본에서도 무슨 일인진 모르겠지만
그들만의 리그라고 생각했던 정치라는 분야에
국민들의 관심이 고조되는 분위기이다.
이런 투표하러 가자! 라는 해시태그가 달린것도 처음보고 말이다
사실 너무 길어서 두편으로 분리시키려 했지만
두개는 너무 짧고 하나는 너무 길어 가독성이 떨어져 루즈해질 수는 있지만
그래도 끝내는 게 맞다고 생각되어, 마무리 짓는 것에 초점을 맞췄다
지난편에선 호기롭게 어제까지의 경제를 말한다고 했는데
생각해보니 오늘 선거이기도 하고
차라리 다음편(후기)에 못다한 이야기와 함께 경제정책을
엮어서 내는 편이 되려 안정적이고 읽기 더 편할 것 같다란 생각에서이다
일단 본편은 이렇게 마무리 지으려한다
첫번째 시리즈였고, 꽤나 미흡한 부분이 많았지만
지금까지 봐와주셨던 많은 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드리며
글을 마무리지으려 한다
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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